'무릉계곡' 순한 풍경 지나..'기암 절벽' 극한 비경에 압도 당하다

박경일 기자 입력 2021. 7. 1. 10:10 수정 2021. 8. 3. 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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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타산의 압도적인 바위 벼랑에다 앉힌 전망대가 아찔하다. 전망대가 있는 자리는 그동안 누구도 범접할 수 없었던 접근 불가의 공간이었다. 여기에 서면 발아래로 무릉계곡의 용추폭포와 쌍폭포가 새의 시선으로 내려다보인다. 주위에 늘어선 거대한 바위들이 고층빌딩을 방불케 한다고 해서 전망대에는 ‘두타산협곡 마천루’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집채만 한 바위가 거인의 공깃돌처럼 뒹굴고 있는 무릉계곡의 옥류동. 용추폭포, 쌍폭포와 함께 무릉계곡의 진면목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곳이다. 물소리와 새소리를 들으며 이런 계곡을 따라 걷는 것만으로도 ‘신선놀음’이다.
왼쪽 사진부터 논골담길 벽화마을의 전망대 ‘바람의 언덕’에 세워진 조형물 ‘만복이네 식구들’.바닥을 유리로 마감해 바다 위를 걷는 듯한 느낌을 주는 해랑전망대. 도째비골 스카이밸리의 중심 시설인 59m 높이의 스카이워크 ‘하늘 산책로’.

■ ‘신선의 쉼터’… 동해 두타산협곡 마천루 전망대

- 계단따라 하늘로… 하늘로…

두타산 기암 능선에 놓은 바윗길

바위 사이 바느질하듯 이은 계단

구름 탄 신선의 시선 즐길수있어

- 무릉도원… 여기가 ‘찐’이네

호랑이 전설 품은 ‘호암소’에서

용추폭포까지 4㎞ 남짓 계곡길

풍광 탁월… 김홍도 화첩에 담아

# 담아낼 수 없었던 물소리와 새소리

동해 무릉계곡은 두타산과 청옥산 사이로 이어지는 계곡이다. 호랑이가 건너뛰다 빠져 죽었다는 전설의 ‘호암소(虎岩沼)’(무릉계곡 입구 주차장 뒤쪽에 있다)에서 물길을 거슬러 쌍폭포와 용추폭포까지 계곡은 4㎞ 남짓 이어진다. 무릉계곡을 일러 흔히 ‘무릉계(界)’라고 한다. ‘시내 계(溪)’자가 아니라 ‘경계 계(界)’자를 쓰는 건 ‘무릉의 구역’이라는 의미다.

‘무릉’이란 이름은 세상과 멀리 떨어진 별천지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무릉도원(武陵桃源)’에서 가져왔다. 무릉도원이란 중국의 시인 도연명이 지은 ‘도화원기’에서 비롯한다. 도화원기는 중국 진나라 때 ‘무릉’이란 지역에 사는 한 어부가 복사꽃 핀 숲속의 물길을 따라갔다가 난리를 피해 숨어든 이들이 모여 사는 지상낙원의 별천지를 방문해 융숭한 대접을 받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복사꽃이 환하게 피어난 이상향의 이야기는, 돌아온 어부가 다시 그곳을 찾으려 했지만 끝내 찾을 수 없었다는 것으로 마무리된다.

도화원기 이래 빼어난 경관의 공간에는 ‘무릉’ 혹은 ‘도원’의 이름을 가져다 썼다. ‘무릉리’라는 지명은 영월에도, 거창에도, 정선에도, 괴산에도, 밀양에도, 서귀포에도, 안동에도, 진안에도, 충주에도, 상주에도, 함안에도 있다. ‘도원리’도 마찬가지다. 영월에도, 의성에도, 괴산에도, 천안에도, 당진에도, 보은에도, 양평에도 있다. 다 가본 건 아니지만 무릉과 도원의 이름을 빌린 곳은, 대개 순하고 맑은 땅이었다.

무릉을 자처하는 곳이 적잖지만, 동해의 무릉계곡에 붙여진 ‘무릉’의 이름만큼 적절할 수 있을까. 차갑고 맑은 물이 너럭바위를 타고 넘는 무릉계곡의 풍경은 신선이 사는 별천지를 떠올릴 법한 선경(仙境)이다. 정조의 어명을 받들어 단원 김홍도는 금강산과 관동팔경의 명승을 담은 ‘금강사군첩’을 그렸다. 화첩 속에 무릉계 그림이 빠졌을 리 없다. 김홍도가 그 그림을 그렸던 자리쯤에서 붓 대신 카메라를 들었다. 솔숲에 부는 순한 바람 소리와 굽이를 돌아온 청아한 물소리, 그리고 이따금 끼어드는 새소리를 담아낼 수 없어 아쉬웠다. 그때 먹을 찍어 그렸던 김홍도도, 그리고 화첩을 받아들었던 정조 임금도 그랬을까.

# 누구는 생명을, 누구는 쓸쓸함을 보다

무릉계곡에는 훌륭한 경관뿐만 아니라, 옛사람의 시간까지 겹쳐져 있다. 무릉계곡이란 이름은 400여 년 전쯤, 지금으로 치면 군수나 도지사 격인 삼척 부사 벼슬을 한 김효원이 지었다고 전하지만, 그보다 200년 전에 김시습이 남긴 시에 ‘무릉계’가 등장하니 이름의 시작은 더 오래다.

예부터 수많은 선비가 이곳까지 찾아들어 무릉계곡의 별천지를 보고는 너럭바위에다 저마다 이름을 새기고 감탄의 시, 그리고 그림과 글씨를 남겼다. 미수 허목, 채제공, 김홍도, 양사언, 최윤상… 그리고 시인 김지하. 무릉계에서 누구나 신선이 노니는 이상향을 떠올린 건 아니었다. 인혁당 사건의 조작 사실을 말했다가 다시 수감된 김지하는 1980년 형집행정지로 풀려나자 무릉계곡을 찾아가 머물렀다. 그는 그때 쓴 시를 모아 ‘검은 산, 하얀 방’이란 시집을 냈다. ‘검은 산’은 두타산이었고, ‘하얀 방’은 해남 현산면의 백방포였다. 훗날 그는 동해의 무릉계곡은 ‘시커먼 원한의 그늘’이었고, 지금은 간척돼 자취도 없지만, 귀양 떠난 이와 장사 나간 지아비를 기다리며 모여 살던 포구였던 해남의 백방포에서는 ‘고독과 사무치는 정한’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가 무릉계에서 본 ‘시커먼 그늘’은 무엇이었을까. 짐작건대 아마도 그는 무릉이 품은 자연에서 ‘생명’을 생각했고, 그 생명과 정반대편에 있는 죽음과 원한에 대해 생각했던 모양이었다. 그 시집에서 꺼낸 그리움과 관련한 시 한 줄. “쓸데없는 소리 말라 / 산이 산을 그리워하던가 / 된장이 된장을 그리워하던가 / 양파가 양파를 그리워하던가/ 쓸데없는 소리 말라 / 사람만이 사람을 그리워한다/…/나는 이것을 두타산에서 배웠다.” (김지하의 시 ‘두타산’ 중에서)

무릉계곡에서 그리움과 함께 쓸쓸함을 본 이도 있었다. 조선 말엽, 계곡 옆에 초막을 짓고 평생 은거해 ‘무릉거사’라 불렸던 선비 최윤상. 그는 무릉계곡을 진짜 ‘도원(桃源)’, 그러니까 만발한 복사꽃밭으로 만들고 싶었던지, 일대에 복숭아나무 1만여 그루를 심었다고 전한다. 마흔셋의 이른 나이에 그는 갔고, 그가 심었다는 복숭아나무의 자취도 없는데, 그가 지은 ‘무릉구곡가’만 남았다. 폭포가 쏟아지는 까마득한 바위벼랑. 학이 둥지를 틀고 살았다는 학소대에 그가 시로 매달아둔 쓸쓸함을 읽는다. “맑고 시원한 물에 내 배를 띄우니 / 학 떠난 지 이미 오래되어 대는 비었네 / 높은 데 올라 세상을 바라보니 / 가버린 자 이와 같아 슬픔을 견디나니.” 빼어난 명승의 공간에서 못내 외로웠던 그는 혹시 ‘도화원기’의 어부처럼 무릉도원으로 가는 문을 찾은 건 아니었을까.

# 동해를 밝히는 ‘세 번의 빛’

무릉계곡은, 계곡의 명성이 그 계곡을 이룬 산의 이름을 한참 앞선다. 무릉계곡의 이름값이 그 계곡을 빚어낸 두타산과 청옥산의 존재감을 훌쩍 뛰어넘는다는 얘기다. 두타산과 청옥산은 무릉계곡을 가운데 두고 마주 보고 있다. 두 산의 형상은 대조적이다. 두타산은 잘 벼린 칼처럼 날렵하고, 청옥산은 둔중한 갑옷처럼 완만하고 묵직하다.

‘두타(頭陀)’란 수행과 정진을 뜻하는 산스크리트어를 한자로 받아적은 음차이고, ‘청옥(靑玉)’은 아미타경에 나오는 극락의 일곱 가지 보석 중 하나다. 불교에서 이름을 가져온 두 산 사이에 무릉계곡이 있고 계곡 한쪽에 절집 삼화사가 있다. 삼화사와 부속 암자 관음암·은선암만 남아있지만, 한때 두타·청옥산 일대에는 10개가 넘는 크고 작은 사찰이 산속 곳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삼화사는 신라 말에 창건됐고 고려 태조 때 중창됐다. 본래 절 이름은 ‘삼공암’이었으나 후삼국을 통일한 왕건이 ‘삼국을 하나로 화합시킨 영험한 절’이라는 뜻에서 ‘삼화(三和)’라고 고쳐 달았다고 전한다. 그 뒤로 1000년이 흐르면서 ‘삼화’란 절집의 이름은 절을 넘어 땅에도 새겨지고, 주민의 마음에도 새겨졌다. 동해 사람들은 삼화가 ‘세 번 빛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해석한다. 동해시의 첫 번째 빛은 일제강점기 말기 제철소 개발 때였고, 두 번째가 쌍용양회 동해공장이었으며, 세 번째의 빛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예언 같은 이야기다.

동해시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제철소가 있었다. 무연탄을 연료로 소형용광로에서 선철을 생산했던 제철소다. 1934년 일본 고레가와 제철이 설립한 제철소는 해방 후 삼화제철에 넘겨졌다가 매각돼 1991년 아파트 건설로 사라졌다. 삼화제철에 늘어서 있던 8기의 용광로 중 하나가 경북 포항 포스코 박물관에 영구전시돼 있다. 문을 닫은 삼화제철이 용광로를 고철로 내다 팔았을 때 포스코에서 사 간 것인데, 제 땅의 산업유산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한 동해시는 지금 와서 땅을 친다. 삼화제철이 쇳물을 녹이던 시절이 바로 ‘동해가 빛이 났던 첫 번째’였다.

두 번째 빛이 났던 건 쌍용양회가 들어오고서다. 인근 삼화초등학교에서 교가에 ‘쌍용’이란 회사 이름을 넣어 불렀고, 쌍용양회 직원이라면 믿고 외상을 줬다고 했다. 결혼식장부터 장례식장까지 자랑스럽게 회사마크가 새겨진 작업복을 입고 다녔던 시절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시간이 지나갔다. 그리고 이제 세 번째 번성을 과연 무엇으로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 비경에다 놓은 전망대…두타산협곡 마천루

동해시는 이제 세 번째 번영의 동력을, 관광에서 찾고 있는 듯하다. 근래 들어 동해시에 다양한 매력을 품은 공간이 빠르게 발견되거나 들어서고 있다. 산이고, 바다고 가리지 않는다. 동해시는 그동안 강릉과 삼척 사이에 끼어서 여행목적지로는 별다른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동쪽 바다를 뜻하는 동해와 같은 한자를 쓰는 동해시의 지명이 늘 헷갈렸다.

동해시에는 사실 명소가 적잖다. TV 방송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애국가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추암 촛대바위가 동해의 것이고, 국내 최초의 자동차 전용 캠프장인 망상오토캠핑장의 행정구역도 동해시다. 무릉계곡과 천곡동굴, 묵호등대와 논골담길도 모두 동해시에 있다. 하지만 삼척과의 경계에 있는 추암 촛대바위 명성의 후광은 리조트를 비롯한 기반시설을 잘 갖춘 삼척이 누리고 있고, 강릉과의 경계에 있는 망상해변도 동해시보다 강릉을 찾는 이의 발걸음이 더 잦다.

이런 상황에서 동해시가 두 팔을 걷어붙이고 새로운 명소 만들기에 나섰다. 지난해 여름 두타산에 ‘베틀바위 산성길’을 놓은 것이 시작이었다. 베틀바위는 창검처럼 솟은 바위에다 수직의 벼랑이 어우러져 두타산에서 가장 압도적이면서 기이한 경관을 보여주는 곳이었으나 감히 범접하지 못할 정도로 거칠고 험한 길 너머에 있어 전설처럼 전해지던 명소였다. 그곳에다 누구나 갈 수 있는 길을 놓은 것이었다.

그리고 1년. 동해시는 이번에는 두타산의 기암 능선을 따라가다가 무릉계곡 상류 쌍폭포 쪽으로 내려서는 ‘금강바위길’을 열었다. 새로 놓은 금강바위길은 아무도 접근할 수 없었던 아찔한 바위벼랑 사이로 이어지는 길. 지난해 놓은 베틀바위 산성길과 이어붙여 걸을 수 있는 코스다. 금강바위길이 열리면서 3시간 남짓이던 베틀바위 산성길은 4시간 30분 코스가 됐다.

기암의 능선을 따라가는 금강바위길에서는 입이 딱 벌어질 만한 경관이 줄곧 따라온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수직의 바위벼랑에다 매달아 지은 전망대 ‘두타산협곡 마천루’다. 주위로 치솟은 거대한 바위들이 마치 빌딩 숲처럼 보인다고 해서 ‘마천루’란 이름이 붙여졌다. 바위와 바위 사이를 바느질하듯 놓은 철계단에서 몇 번이고 혼잣말처럼 되뇌게 되는 말이 있다. ‘이런 곳에 대체 어떻게 길을 놓을 수 있었을까.’

두타산협곡 마천루가 선사하는 건 구름을 타고 있는 신선의 시선이다. 전망대에 올라서면 협곡을 이루며 마주하고 있는 청옥산의 거대한 석벽과 무릉계곡 경관의 정점인 용추폭포 물줄기가 한눈에 다 들어온다. 다른 얘기를 하다가 뒤로 미뤄졌지만, 새삼 여기까지 온 목적은 전적으로 두타산협곡 마천루를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새로 놓인 전망대 하나만을 목적으로 그곳을 다녀온대도, 본전 생각은 나지 않을 것을 보증하는 건 그래서다. 그러니 베틀바위까지 보고, 무릉계곡의 물소리까지 듣고 온다면 남아도 한참 남는 장사다.

# 비장의 카드…스카이밸리와 무릉별유천지

기왕 나선 김에 이문을 더 남기고 싶다면, 동해시 여행의 일정에다 묵호등대 옆에 새로 조성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를 끼워 넣어보자. 도째비골이란 도깨비불이 자주 출몰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 문을 연 지 일주일이 채 안 된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바다를 내려다보는 경관 조망에다 이색 레포츠 시설을 결합한 공간이다. 협곡 사이에서 아찔한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전망대 스카이워크에다 외줄 위의 자전거를 타고 계곡을 건너는 스카이사이클, 27m 높이의 초대형 미끄럼틀인 자이언트 슬라이드 등의 놀이시설까지 갖췄다. 도째비골 아래 해안에도 바다 위에 지은 유리 바닥의 스카이워크 해랑전망대가 있다. 발밑으로 파도를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다. 도째비골 스카이밸리는 쇠락한 산동네 마을을 벽화로 단장해 명소가 된 논골담길 벽화마을과 이어져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잇달아 새로운 명소를 선보이고 있지만, 동해시가 아직 꺼내놓지 않은 비장의 카드도 있다. 무릉계곡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2017년 채광을 종료한 옛 쌍용양회 무릉 3지구 쇄석장을 다듬어서 조성하는 복합체험관광단지 ‘무릉별유천지’다. 자칫 흉물로 전락할 수 있는 폐광지를 산업생산의 역사를 보전하면서 자연 친화적인 공간으로 다듬어내겠다는 목표로 만들고 있는 거대한 관광지다. 석회암 지대 특유의 에메랄드빛 물색의 호수 두 개를 중심으로 라벤더 정원과 전망대 등을 조성하고, 버려진 쇄석장을 복합문화공간으로 꾸미게 된다. 곳곳에 스카이글라이더, 오프로드 루지, 알파인 코스터, 롤러코스터형 집라인 등 박진감 넘치는 탈 것도 설치할 계획이다. 이르면 올 하반기 개장을 목표로 하고 있는데, 벌써 라벤더 정원에는 보라색 꽃들로 그득하다. 폐산업시설의 새로운 탄생. 동해가 밝힐 것이라는 ‘세 번째 빛’은 이것일까.

■ 무릉계곡과 신선 이야기

도연명의 ‘도화원기’ 말고, 무릉계곡을 따라 들어갔다가 신선의 세상에 다녀왔다는 이야기가 또 있다. 500년 전쯤 삼척 부사를 지낸 신광한이 쓴 소설집 ‘기재기이(企齋記異)’에 등장하는 단편소설 ‘최생우진기(崔生遇眞記)’다. 최생이란 선비가 두타산 스님과 함께 선계체험을 하러 무릉계곡에 들었다가 용추폭포에서 추락해 행방불명됐는데, 알고 보니 용궁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고 노래와 춤으로 즐겁게 지내다 학을 타고 돌아왔다는 이야기다.

동해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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