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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펌] <디워> 광풍, 꼭 잠재워야 시원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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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tn_memo_send.gif 김경수(kskim94)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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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박스
잠잠할 날 없는 인터넷 세상이 심형래 감독의 <디워>로 또 한 번 뒤집어졌다. 한국 영화 중에 개봉 전부터 이렇게 큰 논란거리가 되었던 영화가 또 있었을까? 더군다나 개봉 후에는 평단과 관객이 편을 갈라서 흡사, 적군과 아군이라도 된 듯 전쟁을 치르는 형국까지 되어 서로에게 날선 단어들을 총알처럼 쏘아대는 모습도 그렇게 친숙한 모습은 아니다.

<디워>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

<디워> 신드롬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이 기현상은 아이러니하게도 <디워>를 혹평했던 평론가들에게서 시작되었다. <디워> 개봉 전·후에 평론가들의 평들을 모아보자.

"700억짜리 파워레인저가 300억짜리 루즈를 바르고 70년대 청계천의 미국식 토스터기를 만든 것과 같은 아동영화를 보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극장을 나오는 길에 oh, my God!을 외쳤다."

몇몇을 뺀 대부분의 비평은 유례가 없을 만큼 신랄했다. 아니 참혹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참혹함이 영화를 살렸다. 사실, 영화 개봉 전까지 만해도 <디워> 팬은 감독 심형래의 의지를 높이 산 괴수영화 마니아층 뿐이었다.

그 마니아층들이 기자시사회 이후 쏟아진 참혹한 비평에 격분, 비평에 대한 반론들을 각자의 블로그들에 실어댔고, 똑같은 평론가가 우리 영화사에 길이 남을 졸작들에 대해 남겼던 선한 평까지도 찾아내 <디워>에 대한 악평과 비교하면서 큰 이슈로 발전하더니, 어느새 관객들과 평론가라는 희대의 웃지 못할 전투장까지 생겨나게 되었다. 하지만 그 전선이 <디워>에겐 차라리 행운이었다.

그 논란으로 <디워>에 대한 혹평들이 일반 관객들에게까지 모두 알려졌고, 관객들은 영화에 대한 기대 수준을 현격히 낮추어, <디워>로서는 그저 평론가들이 손가락질하며 비유한 파워레인저 수준만 넘으면 관객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아주 손쉬운 게임이 되어버렸다.

<디워>를 본 관객들의 평은 극명하게 갈린다. 현란한 CG에 찬사를 보내거나 인간 심형래의 의지에 감동하는 한쪽 편과 단순한 연출과 미흡한 연기력 그리고 빈약한 시나리오와 튀는 편집을 얘기하는 또 다른 한쪽 편으로.

하지만 양 편의 일반 관객들이 공통되게 말하는 부분은 <디워>라는 영화가 개봉 전부터 그렇게까지 처참하게 욕을 먹고 간판을 걸자마자 내릴 만한 영화는 절대 아니라는 거다.

물론 객관적으로 보자면 평론가들의 말처럼 <디워>의 스토리조합은 조악했고, 연출은 너무 일차원적이었으며 이무기를 뺀 나머지 연기자들의 연기력은 하품할 수준이었다. 그래도 <디워>에겐 그 모든 결점을 상쇄할 뭔가가 있었다고 보는 게 일반 관객들의 눈이다.

관객들은 이미 평론가들 덕택에 <디워>에게 감동과 철학을 기대하지 않는다. 심오한 철학까지 담긴 매트릭스나 진한 휴머니즘까지 깔린 <터미네이터2> 같은 SF영화는 아예 꿈도 꾸지 않고 영화관을 간다. 그저 화려한 볼거리들 사이에 신기한 이무기가 덥고 짜증나는 일상의 스트레스만 풀어줄 수 있기만 기대할 뿐이다.

그렇게 지루했던 한 시간여의 서사가 끝나갈 즈음 <디워>는 정확하게 관객들이 기대했던 것들을 보여준다. 화려하다 못해 놀랄 만한 영상들을.

언제나 스토리텔링에 심혈을 기울이는 기존의 한국 영화들과 심형래 감독의 <디워>는 태생부터 다르다. <디워>는 기존의 한국영화와는 다르게 스토리 보다는 볼거리에 더 초점을 맞춘 오락영화다. 그 다른 점이 기본기까지 운운한 평단의 혹평을 불러왔고, 또 그 다른 점에 신기하게도 관객들은 박수를 쳐주고 있다.

현재까지 보이는 여론의 속내는 어찌 보면 한국관객들이 충무로의 천편일률적인 스토리텔링에 식상했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하게 한다. 방학이든 명절이든, 때를 가리지 않고 언제나 호시탐탐 칼부림할 찬스만을 노리는 조폭들이 아니면, 누가 죽던지, 혹은 누가 병에 걸리거나 그도 아니면 경제력 차이로 이루어지지 못할 사랑을 그려내는 신파물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스토리를 이어나가지 못하는 한국영화들.

그리고 한 번 터졌다 하면 재탕, 삼탕하여 원작의 신물까지 울궈먹지 않으면 직성이 풀리지 않는 영화계 습성과 그들의 영화 간판들을 너무 많이 보아왔기에 그에 대한 의심은 커질 수밖에 없다. 그 속에서 500년 만에, 승천하고자 빌딩숲을 헤짚어 대는 이무기의 활약은 엉성한 편집과 연출이라도 관객들에겐 차라리 참신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그게 관객들만의 잘못일까?

이야기 구조만 짜임새 있고, 기승전결이 확실하다고 해서, 한두 편도 아니고, 매번 그 타령이 그 타령인 영화들을 관객들에게 보라고 강요하는 게 차라리 더 큰 잘못이고 더 큰 억지는 아니었을까? 올 여름 시즌 이후에도 조폭들을 그린 영화들이 줄줄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데, 그럼 그 영화들은 기승전결이 확실하기만 하면, 모두 좋은 영화들이 되는 거니까 관객들은 봐줘야 하나?

영화는 애국심의 경연장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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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박스
<디워>를 비판하는 말 중에 가장 자주 등장하는 논리는 "영화는 영화로만 보자"라는 말이다. 배급사는 애국심 마케팅을 그만두고 관객들은 영화를 영화로만 보라라는 주장은 솔직히 당황스럽다못해 괴기스럽기까지 하다.

여긴 도대체 어딘가? 한국인가 할리우드인가? 한국 영화에 외국인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니까 한국 영화 현실까지 덩달아 미국이 되어버린 건가? 아님 영화를 본 사람들이 전부 미국사람들인가? 도대체 한국영화가 언제부터 애국심을 제외하고 얘기를 할 수 있게 되었나?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스크린쿼터 얘기는 진부하니 하지 말자. 대중들의 애국적인 감수성을 자극하기 위해 영정까지 들고 시위를 하던 영화배우들의 얼굴이 너무 선명하긴 하지만, 그 얘기는 너무 커다란 얘기이니 논외로 치자.

하지만 월드 스타 강수연부터 <밀양>의 전도연까지, 여배우들의 해외영화제 수상 때마다 영화팬들이 보내준 박수는 애국심의 발로가 아니었던가? 임권택 감독부터 박찬욱 감독까지, 그들이 세계 거장의 반열에 오를 때마다 뛸듯이 기뻐해준 한국 영화팬들의 마음 저변은 애국심 말고 다른 게 또 있었나?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애국심이 아닌 다른 마음에서 해외에서 흥행하길 우리가 바랐었나? 한류 붐을 타고서라도 우리 영화가 아시아지역에서라도 조금 더 인기가 높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애국심 말고 그럼 무엇이었나?

<디워>에 대한 비판의 논리대로라면 지금까지 영화팬들의 마음도 모두 잘못이 되나? 지금까지는 내내 애국심을 방패삼았으면서 왜 하필 <디워>에게만은 애국심을 거두라 하나? 이건 좀 우스운 차별 아닌가?

개그맨 심형래는 강자였다. 국민 개그맨이라 불려도 손색이 없을 만큼 온 국민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아왔다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하지만 그와 다른 한편, 영화 쪽에서의 모습은 약자 아니었나?

아니 약자라기보다 차라리 6년 전 심형래는, <용가리>와 '신지식인 1호'라는 꼬리표로 전 국민의 조롱거리였던 게 사실 아닌가? 700억(순제작비 300억)을 펀딩 받더니 그 전의 과거들은 전혀 잘못된 사실이 되나?

<용가리>의 처참한 실패와 '신지식인 1호'라는 조롱으로 온 국민의 손가락질을 한 몸에 받았음에도, 절치부심 6년 만에 <디워>로 돌아온 건,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전무한 SF장르의 영화를 올곧게 지켜와 성과물을 내어준 건, 결과물을 평가하기 이 전에 인간으로서 박수쳐줄 만한 일 아닌가?

왜 영화인들은 아니 영화계 언저리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렇게 심형래 감독에게 인색하기만 할까? 이러니 평론가들에게 반대하는 관객들의 목소리들이 커지다 못해, 실체를 알 수도 없는 충무로 음모론이 나올 수밖에.

개봉 3일만에, <디워>에 대한 비판을 하면 융단 폭격당하는 한쪽 방향으로 쏠리는 사회현상이 문제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나타났다. 신기한 일이다. 지금까지 보여준 <디워>에 대한 평론가들의 천편일률적인 비판은 괜찮았고 그들의 비판에 대한 대중들의 반박은 그대로 폭격이 된다고 한다. 그럼 영화에 대한 비판은 영화인들만의 것이라는 얘기인가? 관객들은 조용히만 있어야 하고?

그 사람들은 신기하게, <디워>를 비판한 자신들의 글에 달리는 인터넷 댓글들이, 지나쳐서 무섭기까지 하다고 얘기하면서, 자신들은 그보다 더욱 날선 단어들을 교묘하게 조합하여 공격을 한다. 그리고 자신들의 비판만 당연하고, 정당하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급기야 어느 틈에 자신들은 용기있다고 자찬한다. 참 이기적이고 편하기 만한 아전인수다.

그래도 <디워>에 대한 비판은 쉼 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건 맞다. 하지만 제발 <디워>가 거둔 성과물들은 인정하고 비판하자. 비판만으로 쉽게 잊어버리기엔 <디워>가 해낸 시도는, 이룩해 놓은 기술력은 아까운 한국 영화의 재산이다.

비판은 발전을 담보로 해야 건전하다. 영화인들이 내어 놓는 <디워>에 대한 비판이 건전해지려면 새로운 정신과 새로운 시도에 대한 고민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고, <디워>가 쌓은 영화적 자산도 포용해서 함께 나아가고자 하는 모습도 함께 보여야 할것이다.

<디워>는 조악했다. 하지만...

다음달 중순이면 미국 1500여 영화관에서 개봉하는 한국영화 <디워>. 할리우드 공세에 밀려서 언제나 침체되고 언제나 위기라고하는 답답한 한국 영화계에 새로운 시사점을 주는 바는 전혀 없을까?

익숙하다 못해 헤질만큼 남루해진 신파와 조폭들을 마르고 닳도록 그려대는 한국 영화계에 500년마다 환생하는 여의주를 품은 여성은 조금이나마 새로운 크리에이티브를 제공하진 않을까?

관객들의 <디워>에 대한 열광은 비평가들에 대한 반감으로 시작되었지만, 그 열광이 잠들지 않는 건 <디워> 내부에도 충분히 봐줄 만한 현란한 볼거리가 뒤를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관객들은 이미, 발빠르게 봉준호 감독의 스토리에 심형래 감독의 CG가 더해지는 그날을 영화인들보다 먼저 가슴 설레며 상상하고 있다. 어쩌면 <디워>를 둘러싼 논란들을 잠재우기 위해선 거꾸로 관객들이, 통 크게 비평가들을 위해, 감독 심형래의 영화 <디워>는, 그 영화의 연출은, 연기력은, 편집은 그 영화가 이룩한 CG에 비해서 형편없었다는 걸 관객들도 이미 알고 있다고 말해줘야 할 듯하다.

하지만 그래도, 관객들은 평론가들과는 다르게 <디워>에게 더 큰 박수를 쳐주고 싶어한다고 함께 말해주자. 우린 이미 <디워>가 끝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디워>가 이제 시작한 첫걸음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첫걸음을 뗀 아이에겐 매보다는 칭찬과 박수가 더 큰 힘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디워>에게 박수를 쳐준다고 먼저 말을 해주자.

그리고 심형래 감독에게 덧붙이는 부탁 한마디. 영화 홍보와 관객들의 성원에 보답하기 위해서 무대인사까지도 계획 중이라고 한다. 하지만 부탁하건대 심형래 감독은 지금부터의 스케줄을 모두 접고 작업실로 돌아가 <디워>의 재편집과 CG 수정에 매진했으면 싶다.

인간 심형래에 대한 호감과 한국영화라는 자긍심으로 영화를 보는 데도, 눈에 걸리는 장면들이, 답답한 설정들이 <디워>엔 실은 많아 보였다. 미국 개봉 전에 재촬영은 힘들더라도, 편집이라도, CG 수정이라도 다시 한 번 해줬으면 좋겠다.

우린 한국에서 1000만 관객이 드는 <디워>를 보고 싶은 게 아니다. 우린 벌써 영화의 본고장 미국에서 하늘높이 승천하는 이무기를 상상하고 있다. <디워>를 미국 하늘에서 용으로 승천시키는 일, 그게 감독 심형래가 할 수 있는, 한국 관객들에 대해 할 수 있는 진정한 보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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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라구.” 밤에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든지 아무 관련 없이 로댕은 곧잘 내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알고 있었던 겁니다. 젊었을 때, 이 말이 날마다 얼마나 필요한 것인가를. (릴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