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다반사(日常茶飯事)

[펌] 뻔뻔스럽게 야한 야심을 드러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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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만에 읽은 좋은 글이라서 공유합니다.
책 제목은 "힐러리처럼 일하고 콘디처럼 승리하라"입니다.




뻔뻔스럽게 야한 야심을 드러내라

젊을 때는 아는 것이 많지 않기 때문에 신중해지기 어렵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은 무모하게 불가능한 일에 도전하고, 그리고 때로 그것을 달성한다. 수 세대에 걸쳐 그런 일들이 일어났다. - 펄 벅


 

도저히 이루어질 것 같이 않은 꿈이 제대로 된 꿈이다. 가능한 일,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은 꿈이 아니라 그냥 ‘계획’이다. 꿈, 야심, 야망, 이런 걸 가질 때는 이왕이면 결코 이뤄지지 않을 것 같은 일을 선택하자. 꿈은 아무리 크게 갖는대도 누가 뭐라지 않는다. 게다가 정말 이룰 수도 있으니까.
 

만일 당신이 어느 날 허황하다고 생각하는 야심을 털어놓았는데, 누군가 그 말을 듣고 당신을 견제하거나 두려워하기 시작했다면 당신에게 그 일을 할 능력이 있음을 인정받은 셈이다. 그 후에는 정말로 그렇게 믿고 밀고 나가면 된다.


그런데 실제로 “저는 야망이 좀 크거든요”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보지 못했다. 깜짝 놀랄 만큼 능력이 있는 사람도 결정적인 순간이 되면 갑자기 “저는 원래 별로 야망이 없거든요”라고 말해서 나를 속 터지게 만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럼 지금까지 무엇 때문에 그렇게 노력했는데요?”라고 묻는다. 대부분 우물쭈물 대답을 못 한다. 내숭이었다고? 그럼 다행이다. 야심이 없기야 하겠는가. 그저 그런 마음을 드러내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이겠지. 그러니까 뻔뻔하게 아주 야한 야심을 드러내 보자.
 

지금은 절판돼서 구하기 쉽지 않은데, 리즈 로먼 갤리즈가 쓴 <하버드의 여자들>이라는 책이 있다. 한때 어떻게 살아갈지 앞날이 걱정이라는 후배들에게 읽어보라고 수시로 내가 권하던 책이다. 1986년에 나온 이 책은 미국에서나 한국에서나 별로 관심을 끌지 못하고 잊혀졌다. 우리가 다 잘되고 싶고 성공하고 싶지만 그게 왜 잘 안 되는가를 여러 사례를 들어 잘 설명해주는 책이다.
 

1975년은 하버드 대학 경영대학원(HBS)을 졸업한 여학생 수가 처음으로 10퍼센트를 넘었던 ‘기념비적인’ 해였다. HBS에 처음으로 여학생이 입학한 해가 1963년이니까 12년 만에 가까스로 여자 졸업생 수가 10퍼센트의 문턱을 넘었던 것이다. 2000년 이후 미국의 유명 의대나 법과대학원은 여학생 비율이 반에 육박하거나 이미 넘어버렸다. 반면에 경영대학원은 여전히 여학생 비율이 낮은 분야다. 2006년에 이르러서도 미국 일류 경영대학원의 여학생 비율은 30퍼센트 정도였다. 경영대학원마다 우수 여학생을 유치하겠다고 발버둥을 친 결과 많이 늘어서 이 정도라니까, 의대나 법과대학원에 비하면 정말 부진하다.
 

미국 사회의 최고 성공신화는 기업에서 태어난다. 일찌감치 성공해서 최고경영자(CEO)가 되면 보통 미국인이 평생 벌어도 모으지 못할 돈을 1년 연봉으로 받으면서 신나게 살 수 있다.
 

그렇다 보니 경쟁이 극심하다. 따라서 가정과 직장을 병행하고 싶어 하는 여성에게 기업과 경영대학원은 그렇게 매력적인 분야가 아니다. 급변하는 기업 환경은 잠시도 숨 돌릴 여유를 주지 않는다. 육아를 위해 일시적으로 쉰다는 건 꿈도 꾸기 어렵다. 쉬지 않고 경쟁해도 이길까 말까 한데, 몇 년 쉬고 다시 돌아올 경우 이전의 경쟁력을 그대로 유지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다시 <하버드의 여자들>이라는 책으로 돌아가면, 이 책의 영어 원제는 ‘우리 같은 여자들(Women Like Us)’이다. 갤리즈는 미국의 기업 경영자 후보군단 중 최고의 여성 후보들이었던 HBS 1975년 졸업 여학생들의 10년 후를 추적했다. 갤리즈는 당시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스턴 지국에서 근무하다가 이 책을 쓸 즈음에는 기자를 그만두고 프리랜서로 일하고 있었다. 갤리즈는 HBS 졸업생을 한 명 한 명 만나러 다니기 시작했다.
 

하버드 대학이 아니라 어떤 명문학교를 나왔다 해도 학벌이 성공과 행복을 보장해주지는 못한다. 사실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 사회에서 그대로 쓸모가 있으리라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무리다. 학교란 ‘온실’이고 ‘실험실’이고 ‘진공관’이기 때문에, 거기서 배운 것은 세찬 비바람이 몰아치는 거친 세상에 나오면 아주 조금밖에 힘들 발휘하지 못한다. 교과서란 원래 그런 것이다. 교실 안에서만 힘을 쓴다.
 

HBS 여학생들은 정글이나 다름없는 기업에 뛰어들어 열심히 일하고 있었다. 그런데 HBS의 좁은 문을 뚫었던 이 우수한 여성들조차 여전히 남성 문화가 지배하는 기업에서는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저자는 이들의 사례를 통해서 미국의 기업이 당시까지만 해도 여전히 여성에게 그리 우호적이지 않은 세계라는 현실을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지금도 미국의 기업이 그렇게 여성에게 ‘친절한’ 일터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자는 취재 대상자 중 여섯 명을 골라 집중 추적했다. 그 중 한 가지 결론. 능력이나 결혼, 성격 등 여러 가지 요소를 압도할 정도로 중요한 성공의 요인은 ‘최고경영자’가 되겠다는 야심이었다. 그냥 막연하게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 ‘사장이 되겠다’고 결심하고 일하는 사람이 역시 최고경영자에 가장 근접해 있더라는 것이다. 말하자면, ‘그냥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면 다 잘되겠지’라고 생각하는 안일한 태도보다는, 어디까지 올라가고 말겠다는 각오로 추구할 때 훨씬 더 효과적으로 목표에 접근한다는 것이다.
 

그때는 이 부분을 읽는 순간 ‘앗’하고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이런걸 가지고 뭘 그렇게 놀랐다 싶은데, 당시의 나에게는 새로웠다. 왜냐하면, ‘뭐가 되어보겠다고 발버둥치지 말고 주어진 일 열심히 하고 그러다 보면 다 잘되는 것이지 왜 억지를 써야 하나’ 이런 식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이다.
 

내 주변의 많은 사람이 그런 방식으로 일하고 있었다. “내가 지금 하는 일은 그 누구보다 잘할 수 있어. 그러니까 엉뚱한 일로 나를 귀찮게 하지 마”라는 식이었다. 여기서 엉뚱한 일이란, 피곤하기만 한 회식 자리, 마음에 없는 소리로 일관해야 하는 단합대회 등 업무와는 직접 관련이 없이 추가로 요구되는 ‘사회생활’을 말한다.
 

게다가 권력, 지위, 돈에 대한 야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 자체가 천박해 보인다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에 설득돼 있었다. 하지만 아무 목표도 없이 그저 하루하루 발등만 보고 살아가는 것도 그리 자랑스러운 일이라고는 할 수 없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한다는 것은 자기 만족을 극대화하고 야무지게 보이고, 그래서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줄지는 몰라도 그냥 그것뿐이다.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면 아무리 열심히 걷고 또 걸어도 결과적으로는 제자리걸음이든지 아니면 엉뚱한 방향으로 가고 있기 십상이다.
 

그래서 ‘비전’이 중요한 것이다. 비전이란 미래에 대한 나만의 그림이다. 동시에 미래의 관점에서 현재에 의미를 부여해주는 등대와도 같은 것이다. ‘내가 왜 사서 이 고생을 하나’라는 의문은 ‘밥 먹고 살기 위해서’라는 대답으로 충족되지 않는다. 그 고생이 우리가 어딘가를 향해 가는 길에 감당해야 할 의무라고 생각될 때 비로소 의미가 생긴다.
 

이 책이 내 마음을 두드렸던 또 하나의 이유는 저자도 이 취재 과정을 통해 자기가 안고 있는 문제에 대한 답을 찾아나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월 스트리트 저널>의 보스턴 지국에서 일하던 갤리즈는 어느 날 회사에서 뉴욕에 가서 근무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더 많은 책임을 지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그러나 갤리즈는 망설였다. 남편은 막 보스턴에서 변호사로 일하기 시작했고 두 사람은 보스턴 생활에 뿌리를 내리던 참이었다.
 

당시만 해도 그 신문사에 여성 지국장 한 명 없던 그런 시절이었다. 갤리즈는 결국 회사 측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훗날 그는 이렇게 썼다.
 

“ 나는 모험이 두려웠다. 실패할까 봐 무서웠고 결혼생활이 잘못될까 봐 두려웠다. 그러니까 사실 나는 ‘내가 믿고 싶었던 것만큼 그렇게 야심적인 사람’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 마지막 문장이 마음을 찡하게 했다. 결단의 상황이 닥치기 전까지 우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잘 모른다.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 비로소 우리는 자신에 대해 알게되는 것이다.
 

갤리즈는 이런 결정을 내림으로써 미래의 일부를 대가로 지불하게 된다. 회사의 관점에서 갤리즈는 기회가 주어져도 거기에 도전하지 않는 사람으로, 또 변화를 두려워하는 사람으로 비친 것이다. 조직의 입장에서는 기회를 주어도 별로 열띤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직원을 위해 여러 번 배려할 이유가 없다. 일하겠다는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므로.


갤리즈의 관점에서는 여러 상황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경력상의 타격은 컸다. 회사는 갤리즈에게 흥미와 관심을 잃었다. 그 이후에는 그야말로 되는 일이 없었다. 세상은 기회를 쉽사리 주지도 않지만, 기회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잡지 못하거나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인간에 대해서도 가혹하다.


도전에는 응전만이 있을 뿐이다. 주저하는 동안 기회는 사라진다. 힘들고 어려워서 피한 한 번의 기회는 때로 다음, 그 다음 기회까지 사라지게 만든다. 어쩌면 인생은 늘 새로운 문을 열고 나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생각해보자. 당신은 안락한 방 안에 있다. 마음에 쏙 들지 않아도 그럭저럭 마음에 드는 그 방에 있으면 크게 행복하지는 못해도 불행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런데 거기에 내가 들어왔던 문 말고 정체불명의 문이 하나 있다.


저 문을 밀치고 나가볼까 말까. 그것을 결정하는 것은 당신이다. 당신은 지금 있는 그 방에,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나쁘지 않은 그 방에 영원히 머무를 수도 있고, 저기 저 문을 열고 나가볼 수도 있다. 문을 열고 나가는 순간 다시 돌아올 수 없다. 그것이 이 게임의 법칙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하지 않은 일’도 점수를 준다. 이를테면 ‘내가 마음만 먹었으면 그 일을 할 수도 있었어’라는 식으로. 하지만 타인은 내가 한 일을 보고 나를 평가한다. 나갈 것이냐, 머물 것이냐.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는 결국 당신이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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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입에서 나오는 말보다도 자기 입에서 나오는 말을 잘 들어라.